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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시애틀 (2)

by 이병준 2015. 10. 30.

자, 그러면 태평양을 건너온 아시안 프로그래머에게 과연 미국이란 나라와 시애틀이라는 도시는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한 무엇일까? 아마 그렇기만 하다면 이 곳까지 건너온 의미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시애틀이라는 도시가 엔지니어에게 좋은 것은, 기본적으로 이 곳의 IT 문화가 신뢰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이라는 불신의 천국에서 건너온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문화적 차이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아니 한국이 불신의 천국이라고?' (그럴분들은 아마 없으시겠지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정말 몰랐단 말인가.


여러분이 가령 미국에서 급히 돈을 쓸 일이 생겼는데 돈을 모조리 한국에 있는 은행에 두고 왔다고 치자. 그러면 아마 여러분은 급히 인터넷 뱅킹에 접속해 미국으로 돈을 송금하기 위해 발버둥을 칠 것이다. 그런데 하필 한국에 있을 시절에, '해외 IP로는 이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도록 하는  서비스(?)'에 가입했다고 치자. 해외에서 이 서비스를 해지할 방법이 있나? 없다. 그러니까 어쩌다, 살다가 정말 어쩌다 그런 실수를 하게 되면 여러분은 낭패를 보게 되는 것이다. 하필이면 태평양을 다 건너고 나서야 그 실수를 깨닫게 되면 정말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상담원과 통화를 하면 아마 '해외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보이스 피싱과 그에 따른 금용 사고를 방지하고자' 같은 고리타분한 일장 연설을 듣게 될 터이고, 해당 서비스를 해지하기 위해서는 영업점에 내방하는 수 밖에 없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를 듣게 되고야 만다. 


자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도 공인 인증서로 '접속'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에 둘이서 서로 전화를 통해 protocol handshaking을 하면, 시간은 좀 오래 걸릴 지라도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실 이런 종류의 방어 시스템은 악의를 가진 사용자에게는 정말로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고 (우회할 방법이 널리고 널렸다는 의미에서)정작 골탕을 먹는 것은 선의의 평범한 사용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스템은 대체 왜 등장하는 것인가? 이런 시스템이 등장하는 것은 전적으로 고객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다. 고객은 일단 잠재적으로 나쁜놈이기 때문에, 일단 '보안'과 관계된 시스템은 어쨌건 사용하기 어렵게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물을 분 있을지 모르곘다. 그렇게 후진 시스템은 안쓰면 되는 것 아냐?


문제는 이렇게 후진 시스템을 여러 금융사가 담합이라도 하듯이 똑같이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단 소리다. 그 담합을 부추키는 것은 다름아닌 정부, 국회, 사법 시스템 등등이다. 이 삼자가 합심해서 법률로 다른 시스템이 등장할 여지를 원천 봉쇄해 놓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해외의 유수 결재 시스템, 은행 법인들이 들어와서 뭘 할 여지가 없다 (PayPal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병신같은 시스템이 법제화될 수 있다는 것은, 단언컨대 정부라고 불리는 조직이 국민을 전혀 믿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병신같은'이라고 부르느냐. 그렇게 오만가지 플러그인과 프로그램으로 칠갑을 해도 사고를 막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정작 대부분의 보이스피싱 사고는 그렇게 칠갑을 해 놓은 시스템을 악용한 결과로 생기며, 또 상당수는 그 시스템과 아무 상관이 없는 취약점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내 소중한 한 표로 만든 이 민주정부가 나를 못믿는다고? 이 엄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미 세뇌된 것이다. 내 역사관이 새빨갛게 물들까봐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 것 보라. 자라나는 아이들이 빨갛게 물들까봐 교과서를 바꾼다는 것이다. 기가 차는 일 아닐 수 없다. 정작 아이들의 머리 속에 박히는 것은 오히려, 불신이다. 이 정부는 내 가치관을 믿지 못하고, 게다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주체사상에 물들까봐 걱정한다. 아니 걔들이 머리에 총맞았나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서 중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나라의 가치관에 물들게. 


아 물론, 정말로 믿지 못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너무 확신에 차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 또 이데올로기 가득한 분탕질을 쳐 놓으면, 다음에 또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각설하고, 이런 '불신'의 메커니즘은 너무 이곳저곳 널리 퍼져 있어서, 직장을 옮길 때도 여지없이 작동한다. '능력을 입증해 보이면 연봉을 올려드리죠. 일단 이 정도만 받으시고...' 여기서는 반대다. '일단 모든 조건을 잘 고려해서 줄 터이니...' 그렇게 잘 해드릴테니 직장을 옮기라고 추파를 던지는 리크루터만 일주일에 두명씩 만나게 되는 도시가 이곳이다. (시애틀로 직장을 옮긴 이후로, 정말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연락을 받고 있다.) 그러니 정말 협상 능력만 좋으면 직장 옮기는 것 만으로도 연봉을 꽤나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무작정 좋을 수는 없다. '쌍방 중 어느쪽이건 언제든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조건이 계약서에 박히게 되기 때문이다. 시애틀 뿐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IT 기업들이 그렇다. 


그런데 그런 무시무시한 조건에도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와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놀라운 성과를 내는 것은, 일단 나를 믿어주기 때문이다. 믿고 잘 대접해주기 때문이다. 설사 기대에 못미치는 성과를 내도, 얼마 동안은 진득히 기다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잘못된 사람을 뽑을 리스크'를 한국과는 다른 식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미국은 잘못된 사람을 뽑을 리스크를 확률적으로 낮추기 위해 채용과정이 복잡하고 어렵다. 대신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은 확실하게 믿어준다. 잘못된 사람일 확률이 낮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잘못된 사람을 뽑을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초기 기대치를 낮춰잡고, 그에 따라 연봉을 책정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짜게 주고, 잘 한다 싶으면 대우를 잘 해 주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리스크 관리를 하다 보니, 채용과정이 복잡할 필요가 없다. (물론 요즘 한국 기업의 채용과정도 많이 복잡해지고 있다. 그런데 채용 과정만 복잡해진 기업이 의외로 많다.)


그런데 너무 그렇게 하면 기업가가 느끼는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정말로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는 부담은 상상 외로 크다. 그 부담감을 극복할 수 없거나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사실 그냥 알아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한국과 비교해서 나은 게 뭘까? 빡센 건 똑같은 것 같구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시간이 흘러 모두가 납득할만한 수준의 성과를 낼 수 있게 되면, 아무도 그 사람의 다음 행보에 대해서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 일하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애쓰거나 벗어나야 하는 일 없이, 자기 선택대로 다음 행보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기 일을 진짜 사랑하는 엔지니어가 '리더로서의 야망이 없는 산 송장' 취급을 받는 것을 나는 꽤 많이 봤다. 그런 취급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