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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셉터 (5)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전자파의 유해성, 또는 인간에 대한 영향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연구는 통계적 근거가 박약한 헛소리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겁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구요. 이제 인류는 전자기파의 직간접적 혜택이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그 이득을 압도할만한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의 우려는 그저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주장으로 간주되고, 사람들이 '증거'라고 믿는 사건들은 그저 '사례'로 치부될 겁니다. 그런 사례 몇 가지 들어보실까요? 2018년 7월에 미국 콜로라도에서 본인이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 대학원생이 무작위로 선택한 20군데 장소에서 가장 가까운 기지국 위치를 '감으로' 알아내는 실험을 합니다. 결과의 정확성을 주정하기 위해 눈은 가렸고, 운전은 .. 2020. 4. 19.
리셉터 (4) 인간의 중추신경계와 부신수질 내에 니코틴에 반응하는 리셉터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꽤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리셉터들이 대체 언제부터 인간의 몸에 자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기로 하지요. 사실 리셉터, 혹은 수용체라고 불리는 것은 간단하게 보자면 일종의 스위치입니다. 특정한 화학 물질에만 반응하는 스위치. 인체에 특정한 종류의 물질이 흘러들면, 딱 하고 그 스위치가 켜지는 거죠. 이 스위치는 세포 내부와 연결되어 있어서, 스위치가 켜지면 그 세포가 동작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깁니다. 니코틴의 경우에는 이 변화가 혈관을 수축시키기도 하고, 신진대사를 다소 빨라지게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리셉터가 반응한 결과로 내 몸에 유의미한 변화가 .. 2020. 4. 14.
리셉터 (3) "원고 하나를 처리해 줄 것을 부탁했어요." 그녀가 건축가 선생에게 관리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집 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비밀번호는 아실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는 오륙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큼지막한 랩탑을 내게 건넸다. 내가 비밀번호를 알고 있을 거라고? 잠시 당황했으나 답을 알아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그녀와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녀와 나눈 이야기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아, 네." "그리고, 이 옆 방을 쓰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내게 주어진 임무는, 최대 한 달 가량을 그녀의 집에 머물면서 그녀가 생전에 남긴 원고가 잘 '처리'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관절 그 '처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출판인가, 폐기인가, 아.. 2020. 4. 12.
리셉터 (2) 그래서 그녀와 20년을 동네 친구로 지낸 건축가 선생님은 두 달 간 그 방을 깨끗이 개조해 주었고 그녀는 그 방에서 세상의 모든 신호와 차단된 채로 혼자만의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몇 명의 친구들, 그러니까 생전의 그녀가 부르기만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올 정도의 친구 몇 명은 그녀가 세상을 등진 후 며칠 뒤에 그녀 명의로 배송된 등기 우편을 받았다. 그 내용인 즉슨, 편지를 받는 대로 자기 집에 한 번 들러 달라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전달하는 것이 훨씬 어울릴 정도의 간단한 편지여서, 모두는 바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장례식은 간소했지만, 그녀의 유해가 납골당에 안치된 이후에도 친구들은 그녀가 유서에 남긴 소망들을 들어주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중.. 2020.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