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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올드보이

by 이병준 2021. 9. 12.

그는 나를 탁자에 눕히고 묶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어떻게 죽여야 속이 시원할까 고민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답을 들어야 지난 10년을 보상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이었을까. 곧 그는 핏물이 엉겨붙은 망치를 한쪽 어깨에 가만히 대고는 탁자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올랐다. 망치로 머리가 짓이겨지는 상상을 하자, 속이 뒤틀려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몸을 뒤틀며 공포에 신음하자, 그는 물끄러미 나를 굽어보더니 불을 껐다. 이윽고 검은 양복에 감긴 그의 몸은 사라지고, 얼굴과 망치를 쥔 손, 그리고 인광에 번득이는 눈 만이 살의를 내뿜으며 다시 탁자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를 가둔 것은 인간의 정신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의 일부였다. 프로젝트 펀딩이 막 논의되기 시작했을 때 부터 나는 그를 주의깊게 관찰했는데, 그에게 성장을 멈춘 바오밥나무같은 구석이 있어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의 과장이 되기까지 빛났던 그의 지적 능력, 그러니까 숫자에 밝고 사태의 전후관계를 순식간에 파악하는 그 능력은 과장이 된 후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다시 말해 과장 오대수는 사내에서 무용담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그 친구 재작년 계약때 엄청났는데 요즘은 너무 조용하네. 그 친구 입사하고 몇 달 안되어 프랑스 출장 갔을때 사전 하나 들고 거래처 사장 집에 쳐들어갔던 이야기 들었지? 지금은 뭐 한데? 3년 전에 감사팀하고 영업3과 횡령 적발했을 때 멋졌는데 그 때 찍혀서 이렇게 조용한건가?

 

무용담의 등장인물이 아닌 현실의 오대수는 매일매일 꾸역꾸역 숫자를 세고, 자료를 검토하고, 밀려드는 보고서를 검토하고, 중요한 오류를 찾고, 부장에게 보고하는 일을 무슨 기계가 된 것 마냥 반복하고 있었다. 여전히 회사에 중요한 공헌을 하고는 있었으나 더 이상 떠들썩한 화제의 중심이 아닌 오대수는, 마치 주어진 일 포함 세상 모든 일에 흥미를 잃은 사람처럼 굴고 있었던 것이다.

 

'전기충격'

 

우리는 생각했다. 생기빠진 눈으로 모니터와 키보드를 조작하며 주어진 일 이외의 어떤 것도 도전하지 않는 중년 오대수의 정신에 전기충격에 버금가는 자극을 주면, 그는 어떤 인간으로 바뀔 것인가. 그 자극을 신중하게 준비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그를 각성시켜 다음 단계의 인간, 그러니까 현생의 범상한 인류를 기준잡았을 때 200% 정도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초인의 한 형태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질문이자 야심이었고, 오대수를 포함 20명의 샘플로 시작한 인류대각성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 

 

최적의 각성 메커니즘을 찾기 위해, 우리는 20명의 샘플 각각에 서로 다른 정신적 자극을 마련하였다. 그에게 준비된 것은 방이었다. 45평 정도의 공간에 높낮이가 조절되는 테이블과 컴퓨터, 그리고 45인치 모니터를 설치하였다. 방 한 쪽에는 침대와 TV를 준비했고, 다른 한 쪽 구석에는 화장실, 샤워 부스와 다양한 운동기구를 배치하였다. 나머지 한쪽 벽면에는 작은 도서관이라 해도 무방할 서가를 꾸며 각종 프로그래밍 서적을 두었다. 첫 번째 책꽂이에는 프로그래밍 입문서, 두 번째에는 보안 관련 전문서, 세 번째 책꽂이에는 기계 메커니즘에 대한 개론서를 두었고, 그 앞에는 편하게 책을 열람할 수 있도록 소파를 놓았으며, 그 맞은편 벽에는 창을 대신할 대형 LCD 패널을 두었다. 

 

우리가 준비한 과제는 이름하여 '후디니 프로젝트'.  

 

그가 머물 방의 문은 두께 10cm 짜리 강철. 그 바로 옆에는 USB 단자가 구비되어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숙제는, 그 방에 놓인 컴퓨터를 단자에 연결하여 문을 여는 메커니즘을 알아내고, 그 메커니즘과 통신하여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가 프로그래밍을 비롯한 전기 전자 모든 분야에 문외한이라는 것.

 

무리한 설정임에는 분명했으나 우리는 그가 수에 밝다는 것, 그리고 한번 꽂히면 맹목적으로 달려드는 추진력이 남달랐다는 점에 희망을 걸었다. 탈출에 성공한다면, 우리는 인간을 다음 단계의 진화로 이끌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정보를 무제한으로 공급함으로써 그를 지원하기로 했다. 신중히 고른 SDK와 개발도구가 설치된 컴퓨터를 시의적절하게 업그레이드해 제공하는 것은 그 가운데 일부일 뿐이었다. 다만 줄 수 없는 것도 있었다. 인터넷. 스택 오버플로. 레딧. 우리는 그런 것들은 인간의 정신이 자력으로 움직이는데 걸림돌일 뿐이라고 봤다. 그래서 과제에 소용될 모든 정보는 출력물 형태로만 전달하기로 했고, 그것이 그의 방에 좋은 서가를 들인 이유였다. 

 

그 방에서 눈을 뜬 첫 날, 그의 몸은 마취제의 여독으로 무거웠으며, 표정은 낯선 곳에서 깨어난 사람 답게 멍했다.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충격이 밀려온듯 잠시 주저앉았으나 컴퓨터 화면 보호기 메시지를 본 뒤로 빠르게 기력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우리의 메시지는 짧고 분명했다. 방에서 나가는 것 자체가 그에게 주어진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문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을 깨우쳐야 한다는 것. 필요한 모든 실마리는 서가에 있으며, 필요한 장비는 요청에 따라 선별적으로 주어지리라는 것 등이었다. 

 

"하 이런 개 ㅈ같은..."

 

그러나 그는 되찾은 기력을 욕설에만 낭비하지 않았다. 우리가 그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점. 군만두를 비롯 다양한 식단을 물리지 않게 정성껏 제공한다는 점. 티비를 통해 단방향이지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주일에 한번 갖은 종류의 알코올을 제공한다는 점이 그를 안심시켰다. 그러자 그는 곧 서가에 꽂힌 책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읽으면 나갈 수 있다. 배우면 나갈 수 있다. 이것은 휴가다.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기 전에 나가면 된다. 나갈 수 있다. 이 문을 여는 나는 전과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여기는 시간과 정신의 방이다! 그는 그렇게 긍정의 최면을 스스로에게 걸며 프로그래밍을 독학하기 시작했다. 

 

처음 2년은 그에게 무척이나 힘들었다. 액셀이나 파워포인트 이외의 목적으로 컴퓨터를 사용한 적이 없는 자에게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넷플릭스 10년 충성 고객에게 비디오 카메라를 주고 이제 그 정도 봤으면 직접 찍어 볼 때도 되지 않았소? 라고 묻는 것과 같았다. 터미널에 명령어를 찍고 프로그램을 컴파일하여 Hello World를 출력하는 단순한 일도 힘들었다. 하물며 대체 왜 그런 절차가 필요한 것인지 알려줄 선생님 한 명 없었음에랴.

 

하지만 그의 성장을 보며 우리는 줄곧 즐거웠다. 번역서의 오탈자를 잡으며 '이런 등신 새끼들 무슨 번역을 발가락으로' 라고 외치던 그가 원서를 주문해 읽을 지경이 되었을 때는 어떤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3년이 지나 기계식 키보드와 멤브레인 키보드를 구별하며 '코딩에는 게이트론 적축이 좋은 것 같습니다 하나만 부탁드려도 될까요'라고 했을 때는 그의 업무 스타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키보드와 마우스는 무엇일지를 놓고 팀원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년차가 되자, 그의 관심사는 마침내 하드웨어 인터페이스와 네트워크 보안으로 옮겨갔다. 왜 하필 USB-C인가를 두고 투덜거릴 때도 있었지만, 이내 그는 문을 열어야 한다는 본연의 목적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가 문을 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프로그래머로써 보여준 성취는 비록 인류대각성이라는 대의에 값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괄목상대라는 단어에는 걸맞았다. USB 단자 너머에 있는 보안문제 하나만 해결하고 나면, 다시 세상구경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도 그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했다. 맥주와 소주에 나온 배를 다시 집어넣기 위해 일립티컬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었던 것은 한 증거. 사회에 나가기 전에 실무에 대한 감도 익히고 조금씩이나마 경력을 만들어 두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번역 일감을 포함한 외부 프로젝트를 두어개 부탁하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기꺼이 도와주었다. 

 

그의 생활은 점점 더 규칙적이 되었다. 그의 이름이 붙은 번역서는 두 권이 되었고, 프로젝트 검수를 통해 다양한 피드백도 받았다. 대가의 책들로 훈련된 탓인지 코드의 모양새는 좋았으나, 납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은 듯한 대범한 클래스 구조는 너무한 것 같고 단위 테스트는 어설펐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런 피드백에도 겸허히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나는 깨달았다. 인류대각성까지는 날 샜지만, 우리는 오대수라는 한 인간을 잠재력이 충분한 프로그래머로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긍정적인 자극'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꿀 위대한 연구다. 그 결과로, 인류 개조는 아닐 지언정 최소 돈방석까지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날 우리 팀이 거한 축하연을 가질 수 밖에 없었음은,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도 미루어 짐작가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오대수는 문을 열고 사라졌다. 미처 보낼 준비를 시작하기도 전에.

 

CCTV에는 그가 새로 배달된 프린터를 USB-C 케이블로 문에 연결하는 장면, 프린터의 전원을 올리는 장면, 그리고 카메라에 대고 씨익 웃어 보이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우리는 곧 이해할 수 있었다. 고금을 통털어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장비와 인터페이스로, 문을 미치게 만든 것이었다. 

 

아무려나, 그렇게 느닷없이 세상으로 나간 오대수는 한달 반 만에 망치를 들고 돌아왔다. 그의 분노는 사라진 것이 아니며, 감춰져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깨달았다. 인간은 왜 인간인가. 개조할 수 없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언젠가는 제 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어리석음 때문에, 눈 앞에 펼쳐진 밝은 미래를 뒤로 하고서도 다시 복수를 위해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그 어리석음 때문에, 인간은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복수는 나의 것'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해 와신상담해온 자의 그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처분을 기다렸다. 이것은 실패한 실험이다. 인간은 절대 그 한계를 벗고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없다. 인류는 끝없이 과거를 반복하다 종내는 자멸하고 말 것이다.

 

"한 가지만 묻자."

 

그는 물었다. 놀랍도록 처연한 목소리였다.

 

"왜 하필 자바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