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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9

시애틀 (7) 시애틀에 온지도 일년이 지났다. 아니 시발 일년이 지나다니! 벌써 일년이 지나디니! 시애틀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영어가 안되는 것 말고는 다 비슷하자나? 그래! 개발자가 일하는게 다 거기서 거기지! 아무리 아마존이 빡세다고 해도 한국에서 일했던 것 보다야 낫겠지! 그래 자신감 하나로 밀어 부치는거야! 그런 자신감으로 시작했던 아마존 생활은 곧 빈곤한 영어실력에 너덜너덜해지고... (묵념) 아마 그 시절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소위 시니어 스트레스가 아니었나 싶다. 시니어 개발자는 주니어 개발자의 존경을 받아야 하는 자리임은 물론, 여러 팀 간에 생기는 개발 이슈를 적절하게 조정하는 책임도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 되어야 조정이고 나발이고 해 보지.... 썅 그러나 미국 생활을 처음 해 본다는 이.. 2016. 10. 1.
시애틀 (6) 미국에 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케아에서 가구를 산다. 굳이 이케아에 가는 이유는 단 하나. 가구가 싸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가가 한국과 비교해서 싸다고는 하지만 월세 같은 부분은 분명 가당찮을 정도로 비싼 부분도 있고, 서비스 비용은 비싸기가 악명이 높을 정도이기 때문에 (의료비도 그 중 하나) 다들 절로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는 곳이 이곳이다. 이케아의 가구가 저렴한 것은 조립, 배송에 관한 부분을 고객이 책임지기 때문이다. 가구 자체의 품질로 보면 분명 경쟁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렴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그런데 그 가구를 힘들게 집으로 실어와 조립을 시작하고 나면... (묵념) 이케아 가구에는 소프트웨어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첫 번째는, 매뉴얼을 잘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대충 보고 .. 2015. 11. 23.
시애틀 (5) 지난 몇년간 써볼 기회가 없던 언어로 이런 저런 삽질을 하고 있노라면 역시 리팩터링의 백미는 다 만들어진 시스템을 뜯어고칠 때의 희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대개, 리팩터링 자체가 과제로 주어지는 모듈의 소스코드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로 그런 모듈은 입문서의 소스코드 수준에서 시작했다가, 오류가 없다는 것이 검증되고 나면 수많은 이해 당사자들로부터 밀려오는 요구사항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쓸데없이 커지고, 복잡해지고, 너덜너덜해진다. 요구사항이 접수되는 속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해당 모듈의 구조 자체를 검증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물론 명민한 개발자라면 중간 중간 불합리한 부분을 뜯어고치는 시도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부.. 2015. 11. 19.
시애틀 (4) 시애틀의 겨울은 춥다. 한국의 겨울에 비하면 춥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마는, 체감온도는 비슷하면 비슷하지 덜하진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비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 쨍한 하늘을 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계속 비가 내린다. 해를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우산을 들기도 애매한 부슬비를 맞다보면,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렇게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부슬비에 젖어 출퇴근을 하다 보면, 뼛 속 깊이 바람든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느낄 수 있게 된다. 젊은 사람이야 그렇게 내리는 비를 낭만삼아 맞고 걸어갈 수도 있는 노릇이겠지만, 나처럼 사십대 중반의 개발자는 안그래도 안 저린 곳이 없는 마당에 비까지 맞다보면 절로 나이를 푸념하게 되고야 만다. "리. 한국의 겨.. 2015. 11. 14.
시애틀 (3) 그러나 동서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월급쟁이는 아무리 많이 받아봐야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받아봐야 월급쟁이'라는 것은 뭘 의미하나?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대충 먹고는 살 수 있으나 결코 넉넉하지는 않는 벌이' 그러니까 월급쟁이는 아무리 많이 받아 봐야, '뭔가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넉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수준의 월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미국에 봐 봐야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질거라고 기대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일단, 월세가 쎄다. 시애틀은 집세가 월 이천불에서 삼천불 사이다. 좋은 학군, 조용한 환경을 쫓아가다보면 월세가 삼천불에 가깝게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기다 보험 등등 각종 제반 비용을 합하면.... 2015. 11. 2.
시애틀 (2) 자, 그러면 태평양을 건너온 아시안 프로그래머에게 과연 미국이란 나라와 시애틀이라는 도시는 불편하고 부담스럽기만 한 무엇일까? 아마 그렇기만 하다면 이 곳까지 건너온 의미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시애틀이라는 도시가 엔지니어에게 좋은 것은, 기본적으로 이 곳의 IT 문화가 신뢰에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아마 한국이라는 불신의 천국에서 건너온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문화적 차이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아니 한국이 불신의 천국이라고?' (그럴분들은 아마 없으시겠지만, 혹시 그런 분이 계시다면) 정말 몰랐단 말인가. 여러분이 가령 미국에서 급히 돈을 쓸 일이 생겼는데 돈을 모조리 한국에 있는 은행에 두고 왔다고 치자. 그러면 아마 여러분은 급히 인터넷 뱅킹에 접속해 미국으로 돈을 .. 2015. 10. 30.
시애틀 (1) 시애틀이라는 도시는 나에게는, 프로그래머의 도시다. 비행기에 오를 때 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프로그래머의 도시라는 것은 좋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라는 뜻이다. 좋은 일자리가 있는 도시라는 것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좋은 일자리가 없었다면 내게는 큰 의미가 없었을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리. 한국은 어떤 곳이지?" 이방인으로 시애틀에 온 내게, 가끔 동료들이 묻는다. 영어가 서투른 내가 이 질문에 심오한 답을 해 줄 능력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몇 마디 피상적인 대답으로, 한국이 나에게 어떠했는지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은 나를 '리'라고 부른다. "한국은... 모든 것이 편리한 곳이지." 모든 것이 편리하다는 대답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그런 대답에 이른 내 처지를 뒤돌아보면, 미국의 모든 .. 2015. 10. 28.
시애틀 Day 3 시애틀에 도착한지 사흘 째. 심한 목감기로 고생하고 있는 중이라, 어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주 관련해서 이것 저것 처리할 것들이 많아 전혀 쉬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었던 듯. (여기까지 적었더니 집 앞에 있는 Walgreen에서 약을 사다 먹으라는 제보가 들어왔다. 기침을 참을 수 없을 때는 Cough Drops라는 사탕처럼 생긴 약을 물고 있으라고. 더 심해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면 NyQuil을 사다 먹고 뻗어버리라고. 다만 NyQuil은 다음날 오전까지 졸릴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둘째 날에는 애들 학교와 관련된 사항을 알아보고, 등록을 진행하기 위해 연락처를 받아왔다. 좋은 소식은 Temporary housing에서도 학교 등록은 가능하다는 것이고 (첨에는 집 계약서가 있어야만 아이들을 학.. 2015. 9. 26.
시애틀 Day 1 시애틀에 무사히 도착했다. 대략 30회에 육박하는 미국 출장 경험으로 단련되어 뭐 설마 입국 쯤이야... 하는 흐리멍텅한 정신상태로 입국에 임했으나 다행히 아무 일도 없이 다 잘 넘어갔다. H-1B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출입국 도장에 유효 기간이 좀 길게 찍혔다는 것 말고는, 평소 출장 다닐 때와 하등 다를 것이 없는, 지루하고도 평범한 입국이었다. 그러나 미국 땅에 도착하면서 깨달았다. 예전에 출장을 올 때는, 무슨 일이건 생기면 도와줄 동료가 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렌트카를 찾고 짐을 풀고 장을 보고 네비게이션을 보며 길을 찾고 운전을 하고 표지판을 보는 모든 것들을 혼자 해야만 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그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된다는 것 말고는, 한국에서의 생활과 큰 차이가 없.. 2015.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