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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시애틀 (3)

by 이병준 2015. 11. 2.

그러나 동서를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는, 모든 월급쟁이는 아무리 많이 받아봐야 월급쟁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받아봐야 월급쟁이'라는 것은 뭘 의미하나?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대충 먹고는 살 수 있으나 결코 넉넉하지는 않는 벌이'


그러니까 월급쟁이는 아무리 많이 받아 봐야, '뭔가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렇다고 딱히 넉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 수준의 월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미국에 봐 봐야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질거라고 기대하면 곤란하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일단, 월세가 쎄다. 시애틀은 집세가 월 이천불에서 삼천불 사이다. 좋은 학군, 조용한 환경을 쫓아가다보면 월세가 삼천불에 가깝게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거기다 보험 등등 각종 제반 비용을 합하면... 답이 나오지 않게 된다. 게다가 자식 구성이 아들 딸 이런 식이라 방을 따로 줘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이제 3베드 2bath 이런 옵션을 찾아 헤매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출퇴근이 버거워지는 외곽지역으로 슬금슬금 나가야만 한다. 이것이 다운타온에 직장이 있는 사람의 비애랄까...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그래야 그런 옵션이 있는 집을 그나마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가 있다. 


교육비도 세다. 공립학교가 좋긴 하지만, 학교 끝나면 딱히 뭘 할 게 없기 때문에 '예체능 활동이라도 할 수 있게 해 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돈이 많이 들어간다. 삼십분에 얼마, 이런 식이다. 월세가 비싼 동네는 이런 비용도 더 비싸다. 그러니 월세가 비싼 동네에 간다는 것은, 다른 모든 비용이 함께 올라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차값이 비싸다. 다운페이(할부금 비용을 낮추기 위해 초기에 한 번에 내는 금액을 의미한다)를 만불을 낸다고 치고, 혼다 미니밴 같은걸 60개월 할부로 구입한다고 치면 한 달에 사백불 넘는 돈을 내야 한다. 한국차도 많이 비싸져서 옵션 붙이다 보면 상황이 다를 바 없다 (...)


세금이 21% 가량 나오고, 여기서도 짤 없이 월급이 나오기도 전에 싸악 긁어간다. (가족 등록이 끝나고 나면 굉장히 많은 부분이 환급되긴 한다.)


의료보험료가 비싸다. 회사가 일정 정도 부담을 해 주긴 하지만, 4인 가족 기준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옵션을 선택하고 나면 한 달에 이백오십육달러 정도 들어가고, 그렇게 보험을 든다고 해도 deductible이라고 부르는 자가부담금 한도 내에서는 자기가 돈을 부담해야 한다. 이 한도가 넘으면 최소 10%, 최대 30%의 의료비만 부담하게 된다. (물론 이런 종류의 보험은 out-of-pocket maximum 한도가 정해져 있어서, 그 한도를 넘으면 자기 돈은 일절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 돈이 천만원 이상 들어갈 일이 없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그 천만원 한도가 찰 때 까지는 자기 돈은 보통 병원비의 30% 정도만 지출된다.) 


이런 저런 비용을 다 지출한다고 치면, 어지간히 벌어도 딱히 넉넉할 건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


그러니 월급쟁이 팔자에 딱히 낭만적인 팔자고침 시나리오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고 봐야 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그 나라 물가 기준으로 딱히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주는 것이 '관례'다. 그런 관례보다 못 주면 '짜다'고 하는 것이고, 그런 관례보다 더 받으면 '후하'다고 하거나, '능력이 좋네'라고 하는 것이다. 


자, 그러면 굳이 시애틀까지 와서 직장을 구하는 궁극의 장점은 어디에 있다고 봐야 옳은 것인가? 금전적으로만 보면 크게 장점도 없는 것 같구만... 뭐 돌려서 말할 것 없이, 다음의 한 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똑똑한 놈들이 뭘 하는지, 돈 받아가면서 보고 배울 수 있다.'


놀라운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