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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쓸모없다

by 이병준 2021. 9. 12.

말했지만, 영화에 나올 정도로 쿨한 초능력을 갖는 것은 그것 자체로 초능력의 영역에 속할 정도로 어려운 과제다. 가령 내 친구 A는 새끼손가락을 스테인리스 합금으로 변화시킬 능력을 가졌으나, 그 능력을 쓸 곳을 찾지 못해 지금껏 괴로와하고 있다.

 

 

이처럼 많은 수의 초능력자들이 '이걸 어따 써'라는 철학적 질문에 평생을 낭비하고 결국에는 불행한 표정으로 관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것이야 말로 초능력자에게 주어진 하나의 천형. 그 굴레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온전한 시민으로 바로 선 초능력자를 찾는 것은, 스테인레스 합금 새끼손가락으로 코를 파는 것 만큼이나 힘든 일인 것이다. 

 

B는 나와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로, 굉장히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떤 문제던 보는 순간 그것과 똑같은 문제의 레퍼런스를 순식간에 찾아내는 드문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여러분이 "왜 내 로지텍 키보드의 미션 컨트롤 단축키는 됐다 안됐다 하는가" 라거나 "왜 내 로지텍 마우스의 미션 컨트롤 버튼은 됐다 안됐다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다고 해 보자. B에게 이야기하면 여러분은 같은 질문을 던진 사람들의 기록을 인터넷에서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다. 

 

어느날 나는 그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거야?"

 

그가 설명하기를, 똑같은 질문을 한 사람들을 찾는 검색어가 갑자기 머리속에 떠오른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검색어를 검색엔진에 입력해 보면, 반드시 첫 화면 맨 위에서 그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 그런데 잠깐. 그것을 초능력이라 부를 수 있나? 훈련을 거듭하면 누구나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검색 엔진이 동작하는 원리에 익숙해지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음... 그렇지 않지."

 

그는 Bing을 통해 자기 능력이 얼마나 특별한지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그는 검색엔진이 무엇인지에 관계없이, 언제나 최적의 검색어를 발견해 낼 수 있었다. 화면에 야후를 띄우건 Bing을 띄우건, 그는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원하는 결과를 화면 맨 위에 끌어올릴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능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초능력이었다. 그렇다면 이 능력은 대체 왜 쓸모가 없는 것인가? 왜 그는 이런 능력을 갖고도 더 나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될 수 없었는가? 

 

"그게...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을 묻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긴 한데, 거기에 항상 답이 있다는 보장이 없거든."

 

그는 예를 한 가지 보여주었다. 

 

"가령 네가 오래된 레노버 랩탑의 사망 직전 배터리를 교체하고 싶다고 해 보자고. 그리고 교체할 배터리를 어디서 사야하는지 알고 싶다고 해 보자고. 그러면 나는 똑같은 문제를 고민한 사람들이 던진 질문을 순식간에 찾아낼 수 있어. 그리고 그런 질문은 보통 답할 만한 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포럼에 올라오지."

 

"그런데?"

 

"거기 가 보면 어디가 최저가라는 정보가 나오지. 그리고 교체할 때 주의해야 할 사항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 이건 굉장히 운 좋은 경우야. 그런데 만일..."

 

"만일?"

 

"네가 A사의 최근 앱스토어 정책 변화에 대해 궁금한게 생겼다고 해 보자고."

 

그는 사파리를 열어 검색어를 입력했다. 그러자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A사 서포트 포럼의 한 쓰레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이상 그 능력의 쓸모 없음에 토를 달지 않았다.